Thursday, October 5, 2023

“이미 유서까지..” 1박2일 기상송으로 역주행 대박쳤는데.. 생활고에 시한부 인생 살았다는 트로트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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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롤러코스터라고 하는데요. 살아가다 보면 늘 좋은 날만 있을 수가 없죠.

예고 없이 찾아온 불행의 그림자들이 하나씩 쌓이다 보면 ‘어떻게 버텨야 하지’라는 절망적인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 불행이 ‘건강 문제’라면 온갖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이게 되죠.

최근 유명 가수가 생활고와 함께 찾아온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았던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사연의 주인공은 댄스에 트로트를 접목시키며 새 바람을 일으킨 가수 ‘트로트퀸’ ‘김혜연’입니다.

TV조선 예능 ‘스타다큐 마이웨이’를 통해 그녀는 자신의 근황을 전했습니다.

1971년생인 김혜연은 1990년 전국 노래자랑에서 인기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가수의 길로 들어섰는데요.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로 대박을 치며 트로트 가수로 승승장구했습니다. 당시 트로트 앨범이 100만 장이나 팔리면서 이름 석 자를 전국에 알렸죠.

이후에도 ‘간 큰 남자’ ‘참아주세요’ 등의 노래가 줄줄이 히트하며 가수로서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체육학을 전공했을 정도로 건강만큼은 자부하던 그녀였는데요. 높아진 인기에 지방 공연은 물론 밤샘 녹화도 불러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향했죠.

그녀에게 불행은 불현듯 예고 없이 찾아왔습니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사업 실패로 시댁과 친정, 그리고 4남매까지 온 식구를 책임져야 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뇌종양 판정’까지 받았는데요. 오늘 쓰러질지 내일 쓰러질지 모른다는 의사의 말에 혼자 시한부 인생을 살아야 했던 것이죠.

유서와 편지를 쓴 그녀는 ‘가장 먼저 아이들이 떠올랐다. 해준 게 너무 없더라’라며 당시 느꼈던 허탈함을 고백했는데요.

‘엄마로서 낳아주기만 했지 아이들과 여행 한 번 가본 적이 없다. 추억이 아무것도 없더라’라며 밝혀 더욱 안타까움을 전했습니다.

일주일을 눈물로 보냈다는 그녀인데요. 그런 상황에서도 김혜연은 무대에 올라 미친 듯이 일하고 많이 웃었다며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그녀는 만약 자신이 잘못되면 아이들이 나중에 ‘우리 엄마 이렇게 멋있게 일을 했어’라는 얘기를 듣고 싶었다는데요.

김혜연은 ‘그래서 더욱 열심히 살았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남은 삶을 정리하고 마지막을 기다리다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쉽지 않았을 생각과 선택이죠.

그때 기적 같은 일이 그녀에게 벌어졌는데요.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는 김혜연은 ‘의사가 천운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더라’라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당시 의사는 그녀에게 ‘혈관 하나를 찾았다. 혈관 하나만 찾으면 수술을 안 해도 됐다’라며 기쁜 소식을 전한 것이죠.

추적 관찰과 약물 치료는 계속해야 하지만 시한부 삶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는데요. ‘뇌종양’은 수술 자체도 힘들기 때문에 대부분의 환자들은 남은 시간을 정리하는데 쓴다고 하죠.

그때를 떠올린 김혜연은 ‘가수 생활 중요하다. 근데 그거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라며 말을 이어갔는데요.

‘그걸 내가 놓치고 살았다’라며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애정을 전했습니다.

한편 이날 방송에서 그녀가 가수가 되려고 한 이유에 대해서도 밝혔는데요. ‘다산의 여왕’으로도 불린 그녀가 생활력이 강한 이유가 따로 있었죠.

어린 시절 가족들이 생활고에 시달려 친척들 집으로 남매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다는 그녀인데요.

‘우리 가족이 함께 살수 있는 집을 마련하고 싶은 열정이 불탔다’라며 가수의 꿈을 키워나갔다고 합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라고 말하며 어린 시절을 떠올렸는데요.

10만 원을 벌면 5만 원을 무조건 저금한 그녀는 그렇게 모아서 결국 인천 월셋집을 얻는데 성공해 가족들이 모여 살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대중들에게 ‘원조 트로트 아이돌’로 불리기도 한 그녀는 사실 가요계에서는 ‘별종’으로 불리며 시련을 겪기도 했는데요.

당시 무대에서는 보기 힘든 파격적인 의상과 퍼포먼스를 선보였기 때문이죠. 대중의 눈과 귀는 사로잡았지만 선배 가수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당대 트로트 최고 스타였던 문희옥은 김혜연이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과 후배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 모습에 반했다고 하는데요.

문희옥은 그녀에 대해 ‘노래하고 싶은데 무대에 서지 못하는 후배, 생활이 어려운 후배들을 살뜰히 챙겼다’라며 애정을 드러냈죠.

인생의 끝자락에 선 당시 그녀의 심정은 겪어본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헤아릴 수 없을 텐데요.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건강 관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죠. 앞으로도 건강한 모습과 좋은 음악 기대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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