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유흥업소라고 하면 뒷세계와 밀접한 관련을 지녔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항상 검은 돈이 오가는 퇴폐적인 장소로 그려지는 탓입니다. 꼭 작품 속에서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관련이 깊죠.

시중가의 몇 배는 뻥튀기한 가격으로 술을 팔아도 돈을 쓰는 사람이 줄을 서기도 부지기수인데요. ‘물장사가 제일 남는 장사’라는 말대로 마진도 엄청나게 남는다고 하죠.
아예 범죄 조직이 자금 세탁이나 다른 범죄를 위해서 유흥업소를 직접 운영하기도 하는데요. 뉴스에서도 범죄에 유흥업소가 깊게 관련이 있다는 소식을 종종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유흥업소의 주인 중에서 조폭이 아닌 유명 여배우의 가족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와 화제인데요.
덕분에 이 여배우는 굉장히 부유한 유년시절을 보내왔다고 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죠.

도대체 누가 업소 운영 덕분에 금수저를 문 채로 자라났는지 궁금했는데요. 뮤지컬 배우로 시작해 활동 영역을 넓혀온 박해미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박해미는 어린 시절을 충청도에서 보냈는데요. 당시 그의 집은 충청도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부잣집이었다고 합니다.
가족들이 살던 저택만 해도 그 규모가 무려 300평이 넘을 정도였죠.
이런 고래등 같은 으리으리한 집에 살면서 그의 부모님이 해왔던 일은 바로 캬바레 운영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가족들은 부산으로 보금자리를 옮겨가게 되었는데요.
박해미가 이곳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낼 동안 그의 부모님은 일관성 있게 나이트클럽을 운영했다고 합니다.
부산 광복동에 위치한 ‘관광열차’라는 나이트클럽이 바로 박해미 가족이 운영하던 업소였는데요. 당시 유명했던 밴드들이 밤무대 공연을 뛸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고 하네요.
‘어릴 때 부유했지만 가세가 기울어서 힘들게 살았다’라는 식의 스토리는 적어도 박해미와는 관련이 없었는데요. 부산에서 그가 살던 집도 해안가의 전망 좋은 대저택이었다고 합니다.

꾸준히 음주가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던 탓일까요. 박해미는 뮤지컬 배우라는 꿈을 꾸게 되는데요.
그렇게 그는 1984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통해 데뷔를 하는 데 성공합니다.
남들은 죄다 대학로 소극장에서부터 커리어를 쌓는 마당에 출발선도 남들과는 꽤나 달랐죠. 그 후로도 박해미는 계속해서 ‘사운드 오브 뮤직’, ‘멋쟁이 신사’, ‘돈키호테’처럼 굵직한 작품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던 중 박해미를 스타덤에 올려놓는 작품이 그를 찾아오는데요. 바로 뮤지컬 ‘맘마미아’였습니다. 2004년, 그에게 ‘맘마미아’ 주인공 제의가 들어왔던 것이죠.

그는 누가 KTX를 타고 지나가면서 봐도 박해미라는 것을 알아볼 정도로 개성 강한 연기로 유명한데요.
이런 면모를 작품 속에서 숨김 없이 드러낸 덕분에 박해미는 인지도를 높이고 실력을 인정받는 데 성공했습니다.
박해미 본인도 자신이 무명시절을 끝낸 계기를 두고 ‘맘마미아’를 꼽을 정도니 말은 다 한 셈이죠.
‘맘마미아’를 기점으로 박해미의 스케쥴은 1년치가 꽉 차버릴 정도로 바빠졌는데요. 1년에만 작품을 대여섯개씩 할 정도로 그를 부르는 곳이 많았습니다.

‘스위니 토드’, ‘브로드웨이 42번가’, ‘캣츠’까지 듣기만 해도 알만한 명작들을 내리 소화해냈는데요.
여기까지만 들어도 이미 커리어 하이를 달성한 셈이지만 박해미의 행보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2006년에 또 한번 큰 기회가 찾아왔던 것인데요. 바로 공전의 히트를 친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주연 제의가 그것이었습니다.
박해미는 이 작품에서 독보적인 연기와 수많은 유행어로 전국민의 사랑을 받았는데요. 그 결과 MBC 방송연예대상 코미디 시트콤 부문에서 여자 우수상을 차지했죠.

그 후로 박해미는 뮤지컬 무대는 물론이고 브라운관까지 종횡무진 활약했는데요. 비록 중간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박해미의 행보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한 편, 얼마 전에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근황을 알리기도 했는데요. 이 날 박해미는 ‘거침없이 하이킥’의 에피소드와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했죠.
당시 시트콤에서는 무속인이 그를 만나면서 기가 눌려 작두를 타다 발이 베이는 장면이 있었는데요.
박해미는 실제로도 무속인들을 만나면 자신을 보고 땀을 흘리며 당황하다는 말로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기가 세기도 세지만 어린 시절에 굴곡 한 번 없는 유복한 삶을 살아온 덕분에 지금의 박해미가 만들어진 듯 한데요.
앞으로도 박해미만의 특색있는 연기를 여러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