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노래자랑!’
일요일 12시만 되면 이 외침이 들리지 않는 집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는데요.
‘전국 노래자랑’은 이제 단순한 TV 프로그램이 아니라 국민들의 삶에서 떼놓을 수 없는 추억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리고 이 ‘전국 노래자랑’이라고 하면 단연 34년이나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송해를 빼놓을 수 없죠.
1988년부터 2022년까지 송해는 매주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 각지의 국민들과 소통해왔습니다.
노래자랑을 챙겨보지 않는 젊은 층에게도 그는 마스코트와 같은 존재였죠.
송해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현역 방송인 역사상 가장 장수한 최연장자’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오죽하면 송해가 고령에 접어들면서 실시간 검색어에 송해라는 이름만 떠도 연령대를 막론하고 모든 국민들이 ‘선생님께 무슨 일이 생긴거 아니냐’며 호들갑을 떨 정도였는데요.
이런 국민들의 마음에 부응하듯 96세까지 정정하게 장수했지만 올해 결국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다들 한 마음으로 진심을 다해 그를 애도했죠.
이렇게 전국 노래자랑과 오랜시간 함께 해온 그였지만, 중간에 5개월 정도 방송을 하차하면서 하마터면 ‘일요일의 남자’ 송해를 못볼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데요.
송해의 별세와 함께 예전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했다는 소식이 재조명 되었습니다. 남산 낭떠러지에 몸을 던졌다가 소나무에 몸이 걸리면서 살아난 것인데요.

이런 선택을 한 것이 다름 아니라 슬픈 가족사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생때같은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면서 슬픔을 가누지 못했던 것인데요. 많은 사람들이 이 사연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의 아들은 겨우 대학교 2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하고 말았는데요.
1987년 바이크를 타고 한남대교를 지나는 도중 뺑소니 사고를 당했다고 합니다.
송해는 급하게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는데요.
수술실에 들어간 아들이 ‘아버지 살려달라’며 외치는 소리를 듣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고 합니다.

수술을 하고 난 그의 아들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는데요.
나흘 동안 사경을 헤매다 결국 명을 달리하고 말았습니다. 수술만 6시간을 넘길 정도로 중상을 입은 상황이었죠.
이렇게 갑작스럽게 다른 사람의 실책으로 가족을 잃었다면 당연히 가해자를 용서할 수 없을텐데요.
송해는 사고를 일으킨 가해자를 용서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당시 사고를 냈던 가해자는 트럭 운전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었다고 하는데요.

송해는 ‘악연도 인연이고 운전으로 어렵게 생계를 유지할텐데’하는 마음에 가해자를 용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마음이 넓은 사람도 선뜻 내리기 어려운 결정이었을텐데, 어떤 마음으로 그를 용서하게 되었을지 감히 가늠도 하기 어렵습니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방송을 쉬는 그에게 당시 ‘전국 노래자랑’의 PD였던 안인기가 직접 찾아가 그를 설득했다고 하는데요.
안인기의 ‘송 선생님, 이렇게 쉬고 계실 때가 아니올시다. 우리 바람이나 쐬러 다닙시다’라는 말에 다시 마음을 다잡고 방송에 복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송해는 아들을 가슴에 묻고 국민들의 즐거움과 웃음을 위해서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기 시작했는데요.
생전에 입버릇처럼 ‘죽을 때까지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송해가 마지막으로 녹화를 했던 방송분이 5월 15일에 방영되었고, 그가 세상을 떠난 날이 6월 8일이니 채 한 달도 차이가 나지 않는데요.
결국 그는 자신의 말을 지키고 세상을 떠난 셈입니다.

하지만 끝내 고향인 황해도에서 ‘전국 노래자랑’을 진행하겠다는 꿈이 무산되어 많은 지인들과 국민들이 가슴아파 하기도 했죠.
문재인 전 대통령 대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갑작스럽게 진행되고 대북관계가 완화되면서 황해도 방송을 기획했는데요.
하지만 다시 관계가 악화되면서 기획이 전면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송해가 세상을 떠난 후 방송된 추모 다큐멘터리에서도 고향에 가지 못해 하염없이 먼 땅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 나왔었죠.

한 편, 얼마 전에는 그의 뒤를 이어 새로운 MC인 김신영이 성공적으로 방송을 마쳤는데요.
김신영이 프로그램의 생명을 이어가는 만큼 국민들의 마음 속에도 오랫동안 송해의 존재감이 남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