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백대표님 모르시는 분, 아마 없겠죠? 빽다방부터 골목식당까지 그야말로 백종원 대표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구석을 찾기가 더 힘듭니다.
지금은 더본 코리아라는 기업의 대표로써 분야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데요.

이렇게나 대단한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그가 한 때는 사업이 망할 위기에 몰린 적이 있다면 믿어지시나요?
처음부터 성공가도만 달려온 것처럼 보이는 백종원 대표가 사업을 포기하려고 했다는게 선뜻 믿어지지 않는데요.
놀랍게도 그가 전화위복에 성공한 곳은 다름아닌 군대입니다. 우리나라 남자들에게 있어서 군대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인데요.
신의 아들이 아니었던 백종원 대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 위기의 시기를 사업가의 꿈을 이루는 발판으로 만드는데 성공한것이죠.

사실 백종원 대표는 어릴때부터 사업에 대한 꿈을 키워왔다고 해요. 고등학교 졸업도 전에 중고차 시장에서 삐끼까지 해가면서 차를 팔 정도로 사업가 기질이 다분했죠.
게다가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요.
치킨집에 배달 시스템을 도입해 대박을 치다못해 주인 할머니에게서 가게를 인수해 입대 전에 무려 15억이 넘는 자산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이대로 승승장구 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죠. 거의 반강제로 포병장교 입대를 한 상황에서 자리를 비운 사이 치킨집 사업이 꼬여버려 가게는 처분했고요.

10억이 넘던 재산은 주식에 투자했다가 그야말로 공중에 날려버리고 말았다고 해요.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음식에 대한 열정을 놓치 못한 백종원 대표는 선임하사를 설득해 간부식당 관리를 시작했죠.
처음에는 멋대로 보직을 바꾼탓에 혼이 나기도 했고, 훈련이 하기 싫어서 식당에 들어간게 아니냐고 여기는 선임장교들에게 미움도 많이 받았어요.
그러나 매일같이 실력을 갈고 닦으며 간부식당을 책임지던 그의 앞에 드디어 보석같은 기회가 찾아옵니다.

다름아닌 그의 군대 선임이 국민의 입을 즐겁게 해주는 오뚜기의 회장인 함영준 회장이었던 것!
특유의 능글능글함과 사람좋은 웃음, 거기에 음식에 대한 열정까지 빠짐없이 갖추고 있던 백종원 대표는 이내 함영준 회장과 돈독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함영준 회장도 재벌답지 않은 소탈함과 좋은 성격의 소유자인 덕분에 두 사람이 빠르게 가까워질 수 있었죠.
함 회장과의 돈독한 사이를 만드는 것은 물론 백종원 대표는 계속해서 노력을 거듭해 식당의 퀄리티를 높여나갔습니다.

비가 오면 배추값이 떨어진다는걸 포착해서 싼값에 맛있는 김치를 대량으로 만들기도 했고요.
부대에서 최악의 맛으로 꼽히던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맛있게 만들 방법을 연구하다 1인용 뚝배기를 도입해서 최애 메뉴로 탈바꿈시키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어요.
여담이지만, 백종원 대표가 레시피를 다시 짠 덕분에 밥이 맛없다고 매일같이 화를 내던 장군까지도 조용하게 만들 수 있었다고 해요.
이런 그의 노력 덕분에 선임 장교들의 마음도 풀어졌죠. 식당을 발전시키는게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백종원 대표는 말년에 1년동안 외박도 휴가도 안나가고 식당에만 몰두할 정도였습니다.

이 기간동안 백종원 대표는 단순히 음식을 잘하는 수준이 아니라 요식업을 운영하는 노하우를 쌓았습니다.
요리실력은 물론 원가절감과 재료사입, 레시피 개발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해야만 했으니까요.
군대를 제대한 백종원 대표는 이 때 발견한 자신의 재능과 쌓아온 경험을 발판으로 삼았습니다.
논현 영동시장에 자리잡은 원조쌈밥집부터 새마을식당, 한신포차, 빽다방을 비롯한 수많은 브랜드를 만들어 이제는 누가 뭐라고 해도 한국 요식업계의 대부로 자리매김을 톡톡히 했죠.

물론 오뚜기 함영준 회장과의 교류도 꾸준히 이어나갔습니다. 일전에 한 방송에서도 두 사람의 돈독한 사이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맛남의 광장’이라는 예능에서 백종원 대표는 완도 특산물인 다시마 재고가 2천톤이나 쌓여있어 어민들의 시름이 깊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누군가에게 전화를 합니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완도 다시마 재고가 쌓여 어민들이 고생이라고 하는데, 라면에 다시마를 넣으면 안되냐’는 말을 하죠.
알고보니 전화를 받은 주인공은 바로 함 회장이었습니다.

함 회장은 시원시원하게 ‘라면에 이미 다시마가 들어가지만, 두 장을 넣으면 더 깊은 맛이 날 것이다. 라면이 더 맛있으면 많이 팔릴테니 우리도 좋다. 게다가 다시마를 그냥 팔기도 하니까 우리가 한 번 열심히 팔아보겠다’고 대답했죠.
이 날의 전화통화 덕분에 2년 치 재고였던 2천 톤의 다시마가 바로 플렉스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옛말에 ‘될 놈은 어떻게든 된다’는 말이 있죠.
하지만 운도 기회로 만드는 판단력과 과감함이 없었다면 지금의 백종원 대표의 모습도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뛰어난 임기응변으로 자신의 꿈을 이뤄낼 기회를 만들어온 백종원 대표의 모습을 본받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