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을 넘어선 한 가족의 행태가 법까지 바꾸게 만들었습니다.
방송인 박수홍의 친형이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된 상황에 아버지가 “내가 횡령했다”라고 주장하며 논란이 일었는데요.

이 일을 계기로 친족 간 재산 범죄 처벌을 면제하는 형법상 ‘친족상도례’ 규정이 존폐 논쟁에 휩싸였습니다.
지난 4일 박수홍은 116억 횡령과 관련해 친형 A 씨와의 대질 조사를 위해 서울 서부지방검찰청에 출석하였죠.
해당 자리엔 부친 B 씨와 형수 C 씨가 참고인 신분으로 친형과 함께 자리하였는데요.
그런데 이날 부친 B 씨는 1년 만에 만난 아들 박수홍을 여러 차례 가격하고 “칼로 배를 XX겠다”라며 폭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큰 부상을 당하진 않았지만 부친의 말에 충격을 받은 박수홍은 과호흡으로 실신해 인근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죠.
이런 상황에도 박수홍의 아버지는 큰아들이 아닌 자신이 횡령을 했다고 주장하며 논란이 되었는데요.
횡령 주체가 형이 아닌 부친이 되면 ‘친족상도례’ 규정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안 부친이 이를 재산 분쟁에서 벗어날 ‘묘수’로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가족이어도 법적으로 강경 대응할 수 있게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데요.

여야는 물론 한동훈 법무부 장관까지 ‘친족상도례’ 규정을 “예전의 개념”이라며 개정 의사를 내비쳤습니다.
박수홍 가족의 횡령 사건이 알려지면서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친족상도례’라는 형법 원칙이 화제의 중심에 떠올랐죠.
이는 직계혈족이나 배우자, 동거 중인 친족이 사기·횡령·배임 등 재산범죄를 저지를 경우 그 형을 면제한다는 내용인데요.
“법은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라는 고대 로마법 정신에 뿌리를 둔 조항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가까운 친족 사이에 재산을 공동으로 관리하고 쓰는 경우가 많아 친족 간의 재산범죄에 대해선 가족 내부의 결정을 존중하자는 취지로 1953년 형법 제정과 함께 도입됐는데요.
이후 친족에 대한 인식이 변화한 데다 친족을 대상으로 한 재산범죄가 증가하면서 손질하거나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죠.
그간 친족상도례 개정과 관련된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시도는 번번이 무산됐는데요.

14대 국회 때 친족상도례 적용 대상 중 동거가족을 제외하는 형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죠.
19대 국회에선 피성년후견인에 대한 성년후견인의 재산 범죄에는 친족상도례를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입법이 시도됐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되었습니다.
20대 국회 역시 19대와 유사한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본회의 상정조차 되지 않았죠.
박수홍 사건이 불거지면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친족상도례를 개정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데요.

민주당 이성만 의원은 최근 친족상도례 규정을 전면 폐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하였습니다.
이병훈 의원 역시 사기와 공갈, 횡령과 배임에 한 해 친족상도례를 적용하지 않는 내용의 개정안을 내놨죠.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6일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지금 사회에서는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라며 개정에 동의하였는데요.
모두들 공통적으로 “친족상도례는 친족 간 도둑질에 대한 특례”라는 목소리를 낸 것입니다.

전문가들 또한 친족상도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데요.
한 변호사는 “과거에는 친족 간 금전 문제에 처벌을 원치 않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 피해 금액도 커졌고 형사 고소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전하였죠.
또 다른 변호사 역시 “친고죄에 범죄사실을 인지하고 6개월 이내에 신고해야 한다는 규정은 개정의 필요성이 있다”라고 지적하였습니다.
한편으론 법 개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는데요.

법률이 헌법에 위배되는지 판단하는 헌법재판소가 과거 “가정이 평온이 형사처벌로 깨지는 걸 막는데 입법 취지가 있다”라며 합헌 입장을 유지한 바 있기 때문이죠.
횡령을 주도했다고 주장하는 박수홍의 부친은 인터넷 뱅킹 아이디는 물론 비밀번호로 모른다고 합니다.
결국 법의 취약점을 이용해 큰 아들을 구제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텐데요.
죄지은 사람이 마땅한 처벌을 받는 것이 법치주의 국가의 기본인 만큼 박수홍의 형에게 제대로 된 철퇴가 내려져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