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철밥통’이라는 말, 참 많이 들어본 단어인데요.
정년 보장에 연금까지 ‘직장인이 날파리 목숨’이라는 말을 피할 수 있는 장점이 많아 한동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호봉이 쌓이기 전까지는 쥐꼬리 월급을 버텨내야 하는데다 특유의 경직된 문화와 민원인들의 진상까지 겹쳐 공무원의 인기가 한 풀 꺾이고 말았죠.
게다가 공기업들의 재정악화와 방만경영에 대한 뉴스가 넘쳐나면서 세금을 어디에 쓰는거냐는 사람들의 비난도 줄을 이었는데요.
작년 LH 투기사태는 그 방법과 규모가 엄청나 사회면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공공기관에서 또 한번 불합리한 특혜가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인데요.

신도 부러워할 수준으로 공공기관에서 ‘황제대출’을 남발한다는 소식에 많은 국민들이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가뜩이나 금리 인상이 결정되면서 이자 부담 증가로 몸살을 앓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는데요.
가계 근심은 커져가는 이 와중에 공공기관 직원은 0~3%대의 저금리로 주택자금 대출 혜택을 무리없이 받아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저금리 상품에 대한 반발로 정부에서도 규제 지침을 작년에 내놓았지만 이를 무시하는 기관이 태반이었죠.

중앙정부의 규제 지침까지 어겨가면서 기관 직원들에게만 터무니 없는 혜택을 안겨주고 있는 셈인데요.
기획재정부에서 지난해 7월 ‘공공기관의 혁신에 관한 지침’을 마련해 대출 특혜에 대한 재제를 가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것입니다.
해당 지침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한국은행의 ‘은행 가계자금 대출금리’ 상품보다 낮은 금리로 주택자금 대출을 해줄 수 없게 되어있는데요.
버젓이 지침이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한국은행 금리보다 낮은 금리를 제시한 프로그램이 96%에 달했습니다.

현존하는 공공기관의 주택자금 대출 프로그램은 총 124개인데요. 이 중에 무려 122개가 지침을 어긴 것이죠.
심지어 금리 자체도 터무니 없이 낮은 프로그램이 한둘이 아니었는데요. 연 0%대로 거의 이자가 없다시피한 대출 상품은 12개에 달했습니다.
이렇게 혜택이 좋은만큼 당연히 너도나도 앞다투어 대출을 받으려고 하게 마련인데요.
지난 2021년 한 해에만 공공기관 직원 1,328명이 0%대 금리상품을 활용해 대출을 받았습니다.

‘거저 주는 수준’으로 빌려준 대출금만 무려 총 693억 5천만원 상당에 달했는데요.
이 상품을 통한 대출자금은 공공기관 전체 신규 주택자금 대출액에서 20%나 되는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이렇게 황제대출 급의 공공기관 사내대출로 인한 형평성 논란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닌데요.
기획재정부에서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첫 해인 2017년에서 2021년까지 공공기관 주택자금 사내대출액이 무려 62.2%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출 혜택을 받은 인원도 5년 만에 4,437명으로 31.3%가 증가했고, 1인당 평균 대출액은 6,113만원에서 7,547만원으로 23.5% 증가했죠.
더 큰 문제는 이런 황제대출이 공공기관 경영 부실 상태가 악화하는 와중에도 성행하고 있다는 점이었는데요.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해 공공기관 347곳의 부채 총액이 무려 583조원에 달하면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그렇다면 금리가 낮은만큼 대출액도 낮지는 않을까 의문이 들 수 있는데요.

0%대에서 3%대라는 획기적인 금리를 적용하는 동시에 1억에서 2억원 가량의 억대 대출을 해주고 있는 실정입니다.
개선안의 실현 여부도 미지수인 상황이다보니 작년 발표된 지침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는데요.
공공기관의 사내대출 제도 변경은 그냥 위에서 지침을 내린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사 협의를 거쳐야만 가능한 탓입니다.
혜택 자체가 파격적인만큼 노사협의를 통해서 지침 수준으로 상품이 개선될 수 있을지 예측이 힘든 것이죠.

국회에서도 속속 이 문제를 꼬집는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데요.
공공기관의 특혜라는 것이 결국 세금부과를 통해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오는 만큼, 규제 강화가 시급해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