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그렇듯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이죠.
이 스타를 보고 있자면 더욱 그 말이 와닿는데요. 수영장이 팔린 집에서 판자촌으로 파란만장 인생사가 대중들의 시선을 모았습니다.

눈알 연기의 대명사 배우 김민교는 오랜 무명 생활 끝에 ‘SNL’로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죠.
‘북쪽의 그분’은 물론 ‘남쪽의 문 대통령’까지 찰진 연기를 보여주었는데요. 경계 없이 까는 연기 하나만은 여느 배우를 능가했죠.
그런데 신선한 웃음으로 대중들에게 사랑받던 그가 안타까운 개인사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는데요.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겪어 낸 김민교의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모았습니다.

김민교는 병원장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하죠. 쉽게 말해 ‘로열패밀리’에 가까웠는데요.
서울의 유명 대형 병원 중 하나로 꼽혔던 아버지의 병원은 MBC 지정병원으로 선정될 만큼 명성도 높았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실력뿐 아니라 인덕까지 갖춘 훌륭한 의사였던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뺑소니 사고로 입원한 초등학생이 치료비가 없어서 퇴원을 못하고 있자, 직접 찾아가 퇴원을 시켜줄 만큼 가난한 이를 지나치지 못했다고 하죠.

이후 성장한 아이와 엄마가 방송을 통해 병원장을 찾았고 부친의 인망이 세간에 알려지기도 하였습니다.
인덕까지 갖춘 훌륭한 아버지 덕분에 김민교의 학창 시절은 호화롭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인데요.
집에는 수영장이 있었고, 집사는 물론 정원사 심지어 개를 돌봐주는 사람도 따로 둘 정도였죠.
김민교는 하루 용돈으로 1만 원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당시 짜장면 한 그릇이 500원이었던 걸 감안한다면 대단했던 집안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유한 생활을 그리 오래가지 못하죠.
정치에 꿈을 품었던 아버지가 선거에 낙마한데 이어 큰 사기까지 당하며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데요.
1500평 대저택은 하루아침에 허름한 단칸방으로 바뀌고, 그마저도 판자촌 생활로 전락하게 됩니다.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는 말이 김민교 집안에는 통하지 않았죠.
가족 모두가 상심이 컸겠지만 그 가운데서 아버지의 충격은 말로 할 수 없는 지경이었는데요.

김민교가 군대에 입대한 사이 그의 아버지는 속세와 등지고 스님이 되셨다고 합니다.
이제는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는 부친의 말에 김민교는 그렇게 천륜을 끊었다고 털어놨는데요. 그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죠.
가족을 등졌다는 것보다 태산 같았던 아버지가 무너졌다는 사실이 아마도 그에겐 더 큰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15년이 흘러 김민교는 아버지의 투병 소식을 듣게 되죠. ‘췌장암 말기’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말에 그는 매일 아버지에게 달려가는데요.

15년이라는 세월을 보상이라도 하듯 지극정성으로 아버지를 모셨다고 합니다. 매일 찾아뵙기 위해 아버지의 사찰이 있는 시골 마을로 거처까지 옮기는데요.
아들이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 없는 형편이지만 지금의 아내 소영 씨와의 결혼도 서둘렀다고 하죠.
갸륵한 정성이 통했는지 3개월을 넘기지 못한다던 아버지는 3년을 더 사시다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아내와의 결혼도 쉽지만은 않았는데요. 10살이라는 나이 차이에 벌이도 시원찮은 연극배우가 장인어른 눈에 찰리가 만무했죠.

아내는 “존경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이 이 사람이다”라는 말로 장인어른의 맘을 돌릴 수 있었는데요.
처가의 반대를 이겨내고 4년 열애 끝에 결혼하게 된 두 사람은 벌써 13년 차 부부가 되었습니다.
13년이라는 결혼 생활이 마냥 행복하고 평탄치 만은 않았을 텐데요. 갚아도 줄지 않는 빚에 시아버지의 병수발까지 함께 한 아내에게 김민교는 감사함을 표했죠.
그리고 부부는 아이 없이 둘만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데요.

딩크족을 선택했다는 김민교는 “아이를 낳아 다시 달리는 삶을 산다면 스스로에게 미안하다”라며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죠.
김민교는 “그냥 둘이 있으면 마냥 행복하다. 둘이 오래 있건 짧게 있건”이라며 아내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전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스님의 아들이 된 김민교의 애틋한 사연이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데요.
속세를 등져야 했던 아버지, 그 아버지를 버릴 수 없었던 아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