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엔 ‘가난은 나의 힘’이라고 외치는 스타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죠.
가난함에 저절로 간절함이 생기도 가난하기에 노력에서 만큼은 뒤처지지 않았다는 그들은 당당한 스타가 되었는데요.

가난하게 자랐지만 여전히 자신의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스타들의 사연이 많은 이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종영한 KBS 드라마 ‘진검승부’에 출연한 김상호는 첫 등장부터 내추럴한 운동복 차림에 범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냈는데요.
극 중 도경수와 특급 케미를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습니다.
서민의 향기가 물씬 품기는 연기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김상호는 1987년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으로 데뷔하였죠.

가난한 집안의 막내로 오직 세상에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배우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는 그의 최종학력은 중졸인데요.
6.25 참전용사이자 소작농인 아버지를 둔 집안은 무척이나 가난했고 그는 일찌감치 사회생활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대구로 올라간 김상호는 고등학교를 두 번이나 다녔지만 결국 졸업하지 못하며 중졸 배우가 될 수밖에 없었죠.
스무 살 배우의 꿈을 안고 서울로 상경한 김상호는 극단에 들어가 허드렛일을 시작으로 연기에 발을 들이는데요.

연기에 대한 열망은 컸지만 가난은 늘 그렇듯 따라다녔고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당장의 생계를 위해 배우의 꿈을 내려놓았다는 그는 아내의 고향인 강원도 원주에 가 라면 가게를 열었는데요.
다행인 듯 불행인 듯 라면 가게는 뜻대로 되지 않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온 김상호는 연극판으로 돌아오죠.
이후 조금씩 연기로 인정받으며 영화 ‘범죄의 재구성’에 캐스팅되는 행운도 찾아오는데요.

극 중 위조기술자 불광동 휘발유 캐릭터를 맛깔스럽게 표현해 내며 대체 불가 신스틸러 배우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그때 그사람들’ ‘각설탕’ 등에 출연한데 이어 영화 ‘타짜’에 등장하면서 짧은 출연에도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냈는데요.
이후 영화는 물론 드라마에서도 크고 작은 역할로 다채로운 매력을 발산하며 관객들의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습니다.
충무로의 신스틸러에서 이제는 극을 대표하는 타이틀롤로 성장한 김성균도 가난 때문에 눈물 흘리는 일이 많았죠.

김성균은 성숙함(?)을 물씬 풍기는 대학생 역할부터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연쇄살인마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배우인데요.
그야말로 연기에 있어서 평가를 하는 시간조차 아까울 정도이죠. 하지만 그에게도 매우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연극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시절 아내에게 편의점 스파게티 밖에 사줄 수 없었다며 눈물을 훔쳐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또한 반지하에 살면서 아이가 눅눅해진 면봉을 먹는 것을 보고 꿈만 쫓는 자신을 자책하였는데요.

비디오 가게 알바부터 일용직 막노동, 택배 상하차 등 안 해볼 일이 없습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로 주목받기 전까지 택배 상하차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고 하죠.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자신의 힘이 원천이 됐다고 말하는 스타도 있습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배우 서인국의 어머니는 ‘폐지’를 줍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며 가족을 돌봤는데요.

그간 여러 방송을 통해 가난했던 어린 시절은 물론 어머니의 억척스러운 생활력을 공개적으로 밝혀왔죠.
그는 “엄마가 진짜 멋있는 게 폐지 줍는 일을 하셨었는데 제가 데뷔하고서도 그 일을 계속하셨다”라며 자랑스럽다고 전해 박수를 받기도 하였죠.
월드스타 비의 ‘깡’과 ‘열정’은 가난에서 비롯됐습니다.
최선을 다해 일하는 이유를 배고프지 않기 위해서,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라고 한 비는 어린 시절 지독한 가난을 겪었는데요.

인슐린 살 돈이 없어 어머니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그는 고백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죠.
또 해드릴 수 있는 게 편의점의 3분 미역국밖에 없었다고 말은 안타까움을 자아냈었습니다.
가난이 그 무엇보다 고통스러웠지만 또 그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면서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 같은데요.
이제는 가난에서 벗어났지만 과거를 잊지 않고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이들을 보며 또 한번 마음을 다잡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