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사회 각계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들을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는데요.
당장 먹고 살 방도가 마땅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호적 상 자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독거 노인들이 제대로 지원조차 받지 못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있죠.

지원을 받더라도 일상생활을 보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경우도 당연히 많습니다.
노인들이 일을 하려고 해도 시니어 일자리 창출이 미비한 만큼 결국 이런 상황에 놓인 노인들이 선택하는 것은 ‘폐지 줍기’죠.
노쇠한 몸으로 하루 종일 리어카나 수레를 끌면서 폐지를 모으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데요.
설상가상으로 폐지 가격이 키로그램당 80원에서 30원으로 뚝 떨어져버리는 바람에 노인들의 고충은 더욱 커지고 말았습니다.

몸보다 큰 집채만한 폐지 더미를 모아서 업체로 가져가도 받는 하루 일당은 턱없이 부족하기만 한데요.
이렇게 빈곤층 노인의 생계에 위험신호가 켜진 와중, 시세의 무려 6배나 폐지 값을 쳐주는 ‘바보같은’ 회사가 있어 화제입니다.
심지어 회사의 대표는 ‘멋있게 망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는데요.
알고보니 노인 빈곤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회사를 차렸다고 합니다.

친고령과 친환경을 표방하는 사회적 기업의 기우진 대표의 사무실에는 시세보다 6배 비싸게 주고 사온 폐박스가 수북하게 쌓여있는데요.
이미 수많은 노인들에게 이 기업은 ‘핫플레이스’로 자리잡은지 오래입니다.
하나같이 ‘돈을 다른 곳보다 훨씬 많이 쳐주니 여기 오기만 하면 기분이 좋다’는 반응이죠.
하지만 장사라는 것이 남는 것이 있어야 할 수 있는건데, 그렇다면 이 기업은 어떻게 유지가 되고 있는 것일까요.

기우진 대표는 ‘고가로 매입한 폐박스를 업사이클링 해서 친환경 캔버스를 만들고 있다’며 사업 수단을 밝혔습니다.
캔버스를 만드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수많은 재능 기부 작가들이 이 뜻깊은 캔버스를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 시키고 있죠.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의 판매 수익은 다시 어르신들의 폐지 판매 지원에 쓰이면서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가 이런 친고령 사회 사업을 구상한 것은 무려 9년 전부터라고 하는데요. 당시 기우진 대표는 대안학교의 교사로 근무중이었습니다.

기우진 대표는 ‘폐지를 줍는 노인들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보았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는데요.
본인이 가난하게 살았던 어린 시절에 책과 고물, 옷을 팔던 모습과 노인들의 모습이 맞닿아 있다고 느낀 것입니다.
현재 그의 기업은 폐지를 모으던 노인 세 명을 정규직으로 고용 중이기도 한데요.
그가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노인들의 배고픔 뿐만 아니라 ‘정 고픔’까지 해결된 모습을 볼 때라고 합니다.

혼자 살면서 사람들과 교류 없이 고독했던 때와 달리 지금은 눈 뜨면 갈 직장이 있고, 같이 일할 동료가 있어 회사 가는게 설렌다는 것이 직원들의 말이었는데요.
이렇게 좋은 뜻으로 세워진 회사지만 코로나의 기세 앞에서는 자칫 위험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기업과 정부의 주문이 줄면서 매출이 4분의 1로 토막나버린 것인데요.
결국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당시 기우진 대표는 고용했던 직원들을 일시적으로 내보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재능 기부 작가의 활동과 정기구독을 하는 사람들의 후원 덕분에 주저앉는 일 없이 고비를 넘길 수 있었죠.
남다른 뜻을 품고 기업을 세운 그의 마지막 목표는 ‘멋있게 망하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사회적 기업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사회 구조가 나아지고 노인들의 어려움이 해소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목표를 세웠다고 합니다.
한 편, 골판지 업체들의 가격인하 정책으로 인해서 폐지로 생계를 이어가던 노인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는데요.

사회적 기업을 통하지 않는 노인들의 경우 하루에 100kg이나 되는 폐지를 주워도 겨우 3천원을 손에 쥘 수 있을 뿐입니다.
노인들이 내몰리지 않으려면 기우진 대표와 뜻을 같이 하는 기업의 수가 더 늘어나야 할 듯 한데요. ‘멋지게 망하는’ 그 날이 오기까지 더 많은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