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고공 행진을 펼치던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얼마 전 팬들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종영하였는데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우영우의 성장을 가슴 따뜻하게 전달하며 힐링과 감동을 선사하는 드라마로 사랑받았죠.

우영우가 진정한 변호사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겪은 사건들도 시청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요.
작가의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에피소드도 있었지만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각색한 내용도 있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특히 13, 14회에 다뤄졌던 제주도 황지사 재판은 지난 수십 년간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사찰 문화재관람료’ 문제를 다루며 이목이 쏠렸죠.
‘제주도의 푸른밤’ 편에 등장한 제주도 한백산에 위치한 황지사는 도로를 지나는 사람들한테 ‘관람료’의 명목으로 통행료를 걷습니다.

이에 반발한 통행객이 관람료 3000원을 돌려달라며 부당이득금 반환청구 소송을 내는데요.
황지사 측은 “매표소가 설치된 지방도 3008호선은 황지사 경내지이며, 88 올림픽을 앞두고 황지사 일대를 관광할 수 있도록 만든 도로”라고 주장하죠.
이에 우영우는 지방도 3008호선이 국가가 행정 목적으로 만든 ‘공물’이라는 사실을 근거로 결국 소송에서 승리합니다.
물론 한백산과 황지사는 가상의 장소이죠. 하지만 이와 유사한 이유로 30년이 넘게 갈등을 빚었던 사찰이 존재해 시청자들의 관심이 쏠렸는데요.

해당 에피소드의 모티브가 된 것이 바로 지리산 천은사 통행료 갈등이죠.
천은사는 1987년부터 국립공원 입장료와 함께 문화재 관람료 명목으로 통행료를 받았습니다.
‘우영우’에 등장했던 황지사처럼 도로에 있는 매표소가 쟁점거리가 되었는데요.
매표소가 있는 지방도 861호선은 지리산 노고단을 가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 하는 도로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지리산 3대 주봉 중 하나인 노고단의 운해를 보려면 매표소에서 1인당 문화재구역입장료 1600원을 내야 했는데요.
탐방객들은 천은사에 방문할 의사가 1도 없어도 무조건 통행료를 지불해야만 했죠.
일부 탐방객과 시민단체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산적’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불교계 전체를 비난하고 나서는데요.
물론 천은사의 입장료가 불법은 아니었지만 1600원이라는 적디 적은 돈 때문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쌓아가게 됩니다.

사실 이러한 갈등이 발생한 원흉은 정부의 불법점유 때문이었죠.
861번 지방도로는 군사정부 시절인 1980년 초 정부가 사전협의 없이 천은사 사유지에 설치한 비포장 군사작전도로가 시작인데요.
이후 88올림픽이 다가오자 관광자원 개발이라는 명목하게 해당 군사도로에 아스팔트를 깔고 ‘벽소령관광도로’를 완성하게 됩니다.
해당 도로는 천은사 스님들이 수행하는 방장선원의 바로 뒤를 통과하는데요. 마음을 가다듬고 수행을 해야 하는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차량 소음으로 인해 제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이죠.

사실 861 지방도로에 매표소를 설치한 주체도 천은사가 아닌 정부였습니다.
사유지에 길을 낸 것을 대신해 사찰 소유지와 문화재를 보존하라는 명목으로 문화재 관람료를 국립공원 입장료와 합동징수하였는데요.
하지만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되면서 나 홀로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는 천은사에 대한 비난이 더욱 거세지게 되죠.
수십 년간 지속됐던 갈등은 2019년 환경부와 문화재청, 전라남도, 천은사 등이 ‘공원문화유산지구 통행료’를 폐지하는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비로소 해결이 됩니다.

전라남도는 지리산으로 향하는 지방도로가 포함된 땅을 매입하고,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새 탐방로 조성 및 인근 시설 개선에 나서기로 하는데요.
문화재청 또한 문화재 보수와 관광자원화를 지원키로 하면서 케케묵은 갈등이 봉합될 수 있었죠.
하지만 문화재 관람료와 관련된 갈등은 천은사 이외에도 다른 사찰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데요.

문화재청의 집계에 따르면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는 사찰이 아직도 57곳에 이르죠.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마음의 여유를 느끼러 떠난 여행에서 난데없이 ‘삥’을 뜯긴다면 분통이 터질 만도 한데요.
자비와 아량을 공부해야 할 스님들에게 계산기를 두드리는 모습은 조금 어울리지 않는 듯싶네요.